1. 드라큘라가 1930년대 영화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는 주장과 그 논지전개에 문제가 있다
2. 드라큘라를 자본가-노동자의 대립구도로 읽는 방식은 억측이 심하다
정도가 되겠습니다.
우 박사의 논지 전개가 레퍼런스 인용 없이, 약간은 가볍게 넘어가는 측면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만...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그 필자가 비판하는 드라큘라에 대한 명제(우석훈 박사가 소개하고 있는) 둘은 상식적인 사실입니다. 제가 볼 때, 물론 우석훈 박사의 실수라면 실수입니다만, 저 상식적인 명제들을 증명하기 위해 꼼꼼한 논지전개를 사용하지 않은 건 무능이나 실책이라기 보단 '그럴 필요를 못 느껴서'일 것 같지만.
물론 브램 스토커의 소설이 상당한 히트를 기록한 건 사실이나(그 전에는 지금과 같은 어느 정도 정석화된 흡혈귀 상이 존재했다고 말하기도 뭐합니다. 물론 <카르밀라>같은 작품이 있긴 했지만...) 1930년 벨라 루고시Bela Lugosi가 주연한 기념비적인 동명영화가 대 히트를 치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드라큘라'의 이미지가 고정된 건 흡혈귀를 다룬 소책자들에서 상식적으로 풀어주는 이야기 입니다(소설만 놓고 보면, 밀짚모자였나, 하여간 이상한 패션을 한 드라큘라 백작도 등장합니다).
결정적으로 2번 항목에서 비판자가 의문을 제기하는 비평적 시선은(즉 자본가-노동자의 관계 유비하는 것) 드라큘라 비평에서 상당히 공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시각 중 하나입니다. 물론 (비판자가)문학사나 문학비평사를 공부해본 적이 없는 사람일테니까 "솔직히 19세기나 20세기 초에 스토커의 소설이나 할리우드의 영화를 본 사람 가운데 과연 '흡혈귀와 우리 사장의 유비관계'를 눈치챈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었겠는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게 이해는 됩니다만, 스토커의 소설이 출간된 게 19세기 후반부인데 벌써 1854년 찰스 디킨즈가 쓴 <어려운 시절>Hard Times 만 봐도 공리주의자와 기업가가 주요인물이고 노동운동 이야기가 꽤 중요하게 나오고 있거든요. 맑스가 <자본>을 쓴 해가 언제인지는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테고. 거의 한 세기 전의 낭만주의자들 봐도 작품에서 정치-경제적 문제 상당히 자주 언급합니다. 당연히 드라큘라 '백작'이 나오는(그리고 변호사가 백작님을 위해 돈 받고 열심히 뛰는 이야기가 나오는) 소설이 맑시스트 문학비평의 관점에서 다뤄지지 않으면 이상한 거죠. 물론 드라큘라가 정전에 편입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만, 이 텍스트를 맑시스트 비평에서 읽는 시각이 19세기 후반~20세기에 없었다고 단정짓는 게 심각한 착각임이 제가 지적하고 싶은 내용입니다. 영문학이 스스로의 '문학됨'을 인식하기 시작한 건 그보다 꽤 전의 일이고, 19세기 초만해도 본격적인 문학비평담론을 주도하는 저널들이 맹활약하고 있을 때인걸요.
그럼 제 레퍼런스는 어디에 있냐...면 당장 서류론 못 내놓겠고, 작년 겨울에 교수님 지도 하에 드라큘라 읽기 세미나 할 때 듣거나 찾아 읽은 이야기들 입니다. 교수님 전공은 19세기 영소설이고요-_-. 어지간하면 이런 종류의 시덥잖은 비판들은 그냥 한 번 읽어보고 마는데, 어쨌든 관련 전공자(라기엔 공부가 매우 얕지만)로서 이야기 안 할 수 없어 여기에라도 코멘트를 남깁니다.
2번 항목에 대해선 제가 좀 더 보충설명을 해야겠네요(옆에 텍스트도 없고, bibliography 도 없고 세미나 때 받은 자료도 없으니 설명하기 난감합니다만...).
제가 링크한 글에 나와있는 비판자의 주장 중 제가 2번 항목이라고 표기해 놓은 내용에 대한 제 비판은 크게 두 가지 관점입니다.
1) (드라큘라 라는 말을 제가 약간 광범위하게 썼군요) <생태 요괴전>에 제시된 '흡혈귀 이야기를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읽는' 비평 자체는 상당히 고전적인 입장이며 [요새는 외려 다른 방향으로 읽으려고 한다는군요... 뭐 sexual 하게 흡혈을 읽는 것도 이젠 너무 소진되어 버린 얘기일 정도니까]
2) 당대 문학의 현실반영 수준과 비평의 역사를 생각할 때 Marxist 적 관점을 당대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다는 건 편견일 확률이 크다는 것
정도가 되겠습니다. 1854 년에 나온 소설에서 자본가-노동자 이야기를 대놓고 하는데 97년에 나온 소설을 보면서 그런 읽기를 못하면 그게 이상한 거겠죠(물론, Count Dracula 를 도식적으로 자본가로 해석하기는 거시기한 측면이 있는 건 맞습니다. 저도 해외의 구질서 VS. 영국의 합리적 부르주아지 구도가 더 타당하다고 보고요. 하여간 그때 사람들이 그렇게 읽을 수 있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못해 넘쳤단 이야기.).
보통 Marxist 문학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Edward Bellamy 의 Looking Backward 가 출간된 게 벌써 1888년 입니다. 즉 문학과 계급투쟁이 연을 맺기 시작한 역사는 생각보다 길고, 스토커의 소설도 그런 관점에서 읽혔을 가능성은 그 위에서 생각해볼 때 상식적인 수준이라는 거죠. 물론 이를 제대로 입증하려면 레퍼런스를 갖고 와야 하긴 하는데, 비판자의 '그때 그랬을리가!'라는 태도는 문학사적 맥락의 무지에서 비롯되었음을 이야기하는 정도로는 충분하리라 봅니다.
[상영회소식] 개청춘 2009 ATU 상영!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만나요 - 우석훈 박사의 토크로 작품 주변부에 관한 담론도 함께 만들어보고자 한다.
-일시: 2009년 12월 12일 Pm. 7:30 ~ Pm. 11:00
-장소: 이화여대 ECC 內 아트하우스 모모 http://cinemadal.tistory.com/647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얼마나 깨어있는 의식을 가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엄마들이 애들을 점수따는 기계로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각성된 시민의 역할을 해주실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또 한 번 머리를 흔들게 됩니다.
다만 뱃속에 생명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조금 달리 생각할 여력이 있을 것 같습니다. 죽어가는 생명을 보고 가슴아파 할 것이니까요. 그건 우석훈 박사님의 말씀대로 좌파냐 우파냐를 넘어서 사람이라면 가져야할 감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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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아이들에 대한 부모들의 간섭과 조정(콘트롤)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불안하긴 한데요.
사회적 약자인 그들을 어른들이 대변해주지 못하는 이 시대에 아이들의 인권과 각종 권리를 대리인을 통해 표현한다는 점에서 참 긍정적일 것 같습니다. 어머니들(부모)의 한표가 강해진다는 점에서 생태적이 될 가능성은 어느정도가 될런지...
더욱더 명랑해지기 위해서는 미성년자에게 직접 투표권을 주는 방법도 좋을듯 싶습니다. 청소년국회의원. 나오지 말라는 법 있을까요...
으로 보자면,
특목고 유치 경쟁이 더 치열해질수도--;
농담이시져? 어떻게든 막고싶다는.
1번, 2번 모두 대리 투표에 해당합니다. ^^
2번 같은 경우는 왜 부모가 대리 투표권을 주나요, 그냥 청소년에게 주면 되는 것을..
대리투표가 현대 선거제도에 맞지는 않지만, 불법 과정을 거치고도 통과된 법은 유효하다고 보는 위대한 관습헌법을 가진 우리나라에서는 어울릴 수도 있겠다 싶어요.
ㅋㅋ
아빠들이 반대할 듯.
우박사님 비판글들이네요. 비판글은 첨봐서..;;
가열차게 까이고 있다능;;; -o-;;;
우석훈의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안의 오류
http://orumi.egloos.com/4277612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http://imuky.tistory.com/540
진보가 얼마나 못났으면...(우석훈 비판)
http://blog.jinbo.net/radix/?pid=282
근거 없는 설을 주장/차용하고 있다는 게 주 논지군요.
아쉽게도 맨 마지막 링크는 볼 수가 없네요.
맨 마지막 글은 다른 루트로 발췌된 부분을 읽었는데, <생태 요괴전>에서 드라큘라 이야기를 많이 하더군요.
http://djuna.cine21.com/bbs/view.php?id=main&no=195054
(발췌된 부분을 볼 수 있는 주소입니다. 그렇다고 이 사이트에서 트러블이 생기는 일은 없길 바라요)
발췌된 부분에서 제가 읽은 '비판자'의 주장을, 드라큘라 파트에 한정지어서만 요약해 보자면
1. 드라큘라가 1930년대 영화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는 주장과 그 논지전개에 문제가 있다
2. 드라큘라를 자본가-노동자의 대립구도로 읽는 방식은 억측이 심하다
정도가 되겠습니다.
우 박사의 논지 전개가 레퍼런스 인용 없이, 약간은 가볍게 넘어가는 측면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만...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그 필자가 비판하는 드라큘라에 대한 명제(우석훈 박사가 소개하고 있는) 둘은 상식적인 사실입니다. 제가 볼 때, 물론 우석훈 박사의 실수라면 실수입니다만, 저 상식적인 명제들을 증명하기 위해 꼼꼼한 논지전개를 사용하지 않은 건 무능이나 실책이라기 보단 '그럴 필요를 못 느껴서'일 것 같지만.
물론 브램 스토커의 소설이 상당한 히트를 기록한 건 사실이나(그 전에는 지금과 같은 어느 정도 정석화된 흡혈귀 상이 존재했다고 말하기도 뭐합니다. 물론 <카르밀라>같은 작품이 있긴 했지만...) 1930년 벨라 루고시Bela Lugosi가 주연한 기념비적인 동명영화가 대 히트를 치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드라큘라'의 이미지가 고정된 건 흡혈귀를 다룬 소책자들에서 상식적으로 풀어주는 이야기 입니다(소설만 놓고 보면, 밀짚모자였나, 하여간 이상한 패션을 한 드라큘라 백작도 등장합니다).
결정적으로 2번 항목에서 비판자가 의문을 제기하는 비평적 시선은(즉 자본가-노동자의 관계 유비하는 것) 드라큘라 비평에서 상당히 공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시각 중 하나입니다. 물론 (비판자가)문학사나 문학비평사를 공부해본 적이 없는 사람일테니까 "솔직히 19세기나 20세기 초에 스토커의 소설이나 할리우드의 영화를 본 사람 가운데 과연 '흡혈귀와 우리 사장의 유비관계'를 눈치챈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었겠는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게 이해는 됩니다만, 스토커의 소설이 출간된 게 19세기 후반부인데 벌써 1854년 찰스 디킨즈가 쓴 <어려운 시절>Hard Times 만 봐도 공리주의자와 기업가가 주요인물이고 노동운동 이야기가 꽤 중요하게 나오고 있거든요. 맑스가 <자본>을 쓴 해가 언제인지는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테고. 거의 한 세기 전의 낭만주의자들 봐도 작품에서 정치-경제적 문제 상당히 자주 언급합니다. 당연히 드라큘라 '백작'이 나오는(그리고 변호사가 백작님을 위해 돈 받고 열심히 뛰는 이야기가 나오는) 소설이 맑시스트 문학비평의 관점에서 다뤄지지 않으면 이상한 거죠. 물론 드라큘라가 정전에 편입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만, 이 텍스트를 맑시스트 비평에서 읽는 시각이 19세기 후반~20세기에 없었다고 단정짓는 게 심각한 착각임이 제가 지적하고 싶은 내용입니다. 영문학이 스스로의 '문학됨'을 인식하기 시작한 건 그보다 꽤 전의 일이고, 19세기 초만해도 본격적인 문학비평담론을 주도하는 저널들이 맹활약하고 있을 때인걸요.
그럼 제 레퍼런스는 어디에 있냐...면 당장 서류론 못 내놓겠고, 작년 겨울에 교수님 지도 하에 드라큘라 읽기 세미나 할 때 듣거나 찾아 읽은 이야기들 입니다. 교수님 전공은 19세기 영소설이고요-_-. 어지간하면 이런 종류의 시덥잖은 비판들은 그냥 한 번 읽어보고 마는데, 어쨌든 관련 전공자(라기엔 공부가 매우 얕지만)로서 이야기 안 할 수 없어 여기에라도 코멘트를 남깁니다.
2번 항목에 대해선 제가 좀 더 보충설명을 해야겠네요(옆에 텍스트도 없고, bibliography 도 없고 세미나 때 받은 자료도 없으니 설명하기 난감합니다만...).
제가 링크한 글에 나와있는 비판자의 주장 중 제가 2번 항목이라고 표기해 놓은 내용에 대한 제 비판은 크게 두 가지 관점입니다.
1) (드라큘라 라는 말을 제가 약간 광범위하게 썼군요) <생태 요괴전>에 제시된 '흡혈귀 이야기를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읽는' 비평 자체는 상당히 고전적인 입장이며 [요새는 외려 다른 방향으로 읽으려고 한다는군요... 뭐 sexual 하게 흡혈을 읽는 것도 이젠 너무 소진되어 버린 얘기일 정도니까]
2) 당대 문학의 현실반영 수준과 비평의 역사를 생각할 때 Marxist 적 관점을 당대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다는 건 편견일 확률이 크다는 것
정도가 되겠습니다. 1854 년에 나온 소설에서 자본가-노동자 이야기를 대놓고 하는데 97년에 나온 소설을 보면서 그런 읽기를 못하면 그게 이상한 거겠죠(물론, Count Dracula 를 도식적으로 자본가로 해석하기는 거시기한 측면이 있는 건 맞습니다. 저도 해외의 구질서 VS. 영국의 합리적 부르주아지 구도가 더 타당하다고 보고요. 하여간 그때 사람들이 그렇게 읽을 수 있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못해 넘쳤단 이야기.).
보통 Marxist 문학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Edward Bellamy 의 Looking Backward 가 출간된 게 벌써 1888년 입니다. 즉 문학과 계급투쟁이 연을 맺기 시작한 역사는 생각보다 길고, 스토커의 소설도 그런 관점에서 읽혔을 가능성은 그 위에서 생각해볼 때 상식적인 수준이라는 거죠. 물론 이를 제대로 입증하려면 레퍼런스를 갖고 와야 하긴 하는데, 비판자의 '그때 그랬을리가!'라는 태도는 문학사적 맥락의 무지에서 비롯되었음을 이야기하는 정도로는 충분하리라 봅니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은 딱하나 우석훈이 33인 민족 대표가 변절했다는 거를 잘못알고 있었다는 거네 ㅋㅋ
두 가지 모두 대리투표라서 안 될 것 같네요;; 설마 저런 법이 통과될까요 종이한장님의 의견처럼 청소년에겐 투표권을 주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럼 지금같은 입시전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정책들이 현실화되지 않을까요?
엄마들이요? ㄷㄷㄷ 설마 법률적으로 이게 가능하다 하더라도 엄마들끼리 만들어지는 '반상회 뒷담화 여론'의 실체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 뒤로는 ㅋ 장담컨대 파시즘이 한발 가까워질겁니다 ㅎㅎ
[상영회소식] 개청춘 2009 ATU 상영!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만나요 - 우석훈 박사의 토크로 작품 주변부에 관한 담론도 함께 만들어보고자 한다.
-일시: 2009년 12월 12일 Pm. 7:30 ~ Pm. 11:00
-장소: 이화여대 ECC 內 아트하우스 모모
http://cinemadal.tistory.com/647
칼럼 - [우석훈] 지리산 숙성치와 케이블카 논란
http://blog.pdjournal.com/entry/우석훈-지리산-숙성치와-케이블카-논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얼마나 깨어있는 의식을 가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엄마들이 애들을 점수따는 기계로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각성된 시민의 역할을 해주실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또 한 번 머리를 흔들게 됩니다.
다만 뱃속에 생명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조금 달리 생각할 여력이 있을 것 같습니다. 죽어가는 생명을 보고 가슴아파 할 것이니까요. 그건 우석훈 박사님의 말씀대로 좌파냐 우파냐를 넘어서 사람이라면 가져야할 감정이니까요.
우연하게도 제가 작년에 동아리OB모임에서 했던 이야기와 똑같네요. 두가지 옵션까지요. 혹시 질문한 사람이 동아리 동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세상에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입니다. ^_^
이건 좀...
엄마=아기,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부모와 자식을 하나의 객체로 보라는 건지...
너무 끔찍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에서 '혈연관계'란 너무나도 끈끈한...
인제 막6개월된 애기엄마인데요 애기가 아토피로 엄청 고생하고 있지요 사실 뱃속에 있을땐 유산되기도 쉬우니 표주긴 그렇다치고 10살이전까진 엄마한테 주고 10대때는 청소년들한테 직접줘야죠
70이상 노인들이야 생각보다는 고집이 더 쎄시고 판단력도 점점 흐려지시는데 그분들은 주면서 10대랑 애기들 안주는건 사실 말이 안되죠
앞으로 노인인구 늘어날텐데 이분들을 어찌 설득해야되는지 깜깜+갑갑합니다
태아에게 참정권을 인정하고 엄마에게
2표에 한표!
납부하지 않은 세금이 있는 사람의 선거권을 일시 정지하고 고의적 탈세 전과가 있는 사람에게서 선거권을 뺏으면 토건 국가 막을 수 있습니다